![]() Innocent Grey 社의『殼ノ少女』를 클리어했습니다. 정말 여러가지 의미로 기가 막히기도 하고, 대단하기도 한 그런 작품이었습니다. 납득할 수 없는 것, 가슴에 와닿는 것,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서 어디서부터 언급해야 할지 잘 모르겠네요. 다 끝낸 지금에서도 대체 무엇을 말하고픈 이야기인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없다는 생각만큼은 전혀 안 듭니다. 두서없는 감상이나마 끄적여 보면서 그 메시지가 무엇이었는지를 곱씹어 봐야겠습니다. 스포일러가 될 만한 부분은 ▷◁ 사이에 태그로 처리해 두겠습니다. 이 작품은 감히 카르타그라의 완성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듯 합니다. 카르타그라의 등장 인물이 출연하고, 그 사건 이후의 시간축에서 이야기가 전개되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비록 주제가 난해하고 불명확하지만, 그래도 마음에 파문을 던질 만한 이야기였고 그 진행 과정 속에서 미스테리가 굉장히 적절히 녹아들어 있거든요. 예전에 카르타그라를 '이야기로서는 빼어나지만 미스테리로서는 2류에 불과하다' 라고 평가했는데,『殼ノ少女』는 두 요소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고 봅니다. 일러스트는 변함없이 미려했으며 때로는 호흡마저 잊게 만들 정도로 굉장한 부분도 있었습니다. ![]() 예를 들자면 바로 이 CG. (클릭해서 감상해 주시길) 이 게임의 타이틀이기도 한 회화『殼ノ少女』를 감상하고 있는 히로인 토우코입니다만, 게임 속에서는 CG 사이즈가 크기 때문에 저 회화에서부터 시점을 아래로 내리는 간소한 연출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연출이라고 부르기도 힘든 간단한 기법이지만, 그를 통해『殼ノ少女』라는 작품이 갖는 압도적인 존재감과 그에 대면하는 토우코를 매우 잘 그려내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이 CG를 본 순간 이미 ▷토우코의 불행한 운명을 문득 예감할 수 있었습니다. 부디 그 운명에 굴복하는 일 없이 행복해지길 바랬습니다만, 그게 이루어지지 못한 점은 슬프기 그지없습니다.◁ 이야기의 갈래는 어느 정도 다양성을 갖고 있는 편이었습니다. 피아니시모처럼 큰 축이 되는 한 갈래의 이야기 이외에는 전부 도피로 이어지는 무책임한 결말이 아닌 점이 참 마음에 들었어요. 하지만 ▷그 여러 결말들조차도 토우코가 행복을 얻는 모습은 단 하나도 없었다는 점은 씁쓸함을 이기지 못하게 만드는 요인입니다. 주인공이 아무리 최선을 다해 추리하고 행동해 보아도 토우코가 사지를 잃게 되는 사고는 절대 막을 수 없습니다. 또한 트루 엔딩에서 히로인이 (아마도 사망한 채) 위 회화의『殼ノ少女』상태로 행방불명이 되는 결말은 가히 충격적이었습니다.◁ 그치만 어떻게 보면 인간의 한계성을 잘 드러내고 있지 않은가 생각되기도 합니다. 전지적 시점에서 모든 사건의 내막을 아는 플레이어가 아닌, 그저 이야기 속에서 발버둥칠 뿐인 주인공 레이지로서는 사건을 올바르게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겠죠. 그래서 토우코의 그림을 보며 그가 ▷"마침내 자유롭게 되었구나."◁ 라고 말하는 부분은 그것이 사실의 토로가 아닌, 그의 희망은 아닐런지. 이러한 점에서도 카르타그라의 감상에서도 언급했던 '인간의 모습을 꾸밈없이 드러내는' 것이『殼ノ少女』에서 마침내 완성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그것이 행복한 결말로 이어지지는 않는 우리의 삶이 너무나 가슴아프게 그려져 있어서. 싸구려 허무주의에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담담한 마음으로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작품 속에서 殼(껍질)의 의미는 과연 무엇이었는가 또한 곰곰히 생각해 볼 만한 문제인 것 같습니다. ▷과거의 기억이 없이 막연한 불안감을 느끼고 있는◁ 토우코의 상황을 껍질이라고 여기는 것이 가장 간단한 해석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렇게 결정짓기에는 다소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많네요. 광기의 상징이었던『殼ノ少女』라는 회화와 마미야 신지의 소설 속에서 껍질은 썩 좋은 의미인 것 같지도 않고요. 물론 자신을 에워싸고 있는 껍질은 부수고 밖으로 나아가는 것이 가장 좋은 일이겠지만서도, 껍질의 존재에 과도하게 사로잡혀 그 안의 '자신' 마저 진짜가 아니라고 부정하는 것은 서글픈 일일 것입니다. ▷진짜 자신을 찾아달라는 토우코의 의뢰 자체는 완수했지만 결국 토우코를 구해내지 못했던◁ 레이지가 말하는, ▷"토우코, 너는 결국 너였을 뿐이야. (이노카시라 공원 호수의 벤치에서 처음으로 마주쳤던) 쿠치키 토우코."◁ 라는 독백은 무척 와닿았습니다. 토우코는, 어딘가 덧없는 분위기가 있지만서도 심지가 굳고 하고자 하는 바를 강행하며 알게 모르게 상냥한 마음씨를 가진 매력적인 소녀일 뿐이었습니다. 비극적인 출생의 비밀과 과거 따위에 결코 휘둘릴 일 없는, 그녀는 단지 그녀일 뿐이었는데. 자신에게 불안감을 느낄 것 없이 보다 자연스럽게 스스로를 긍정하지 못했던 것이 살짝 아쉽네요. 마지막으로 음악은, 말할 것도 없이 너무나도 좋았습니다. 살인이 이루어지는 장면에서 쓰이는 BGM은 소름이 끼칠 정도로 긴장감을 고조시켰습니다만. 그것을 제외한 나머지 곡들은 기쁘거나 즐거운 곡조이든, 슬픈 곡조이든 너무 극단적으로 치닫지 않는 점이 마음에 들었어요. 적당한 절제를 통해 곡에서 느껴지는 감정을 더욱 선명하게 이끌어내는 느낌은 지금 흐르고 있는 BGM인『殼ノ少女』에서 말이 필요없을 정도로 잘 드러나 있습니다. 인간의 삶에 있어서의 방향성이라는 것은, 아니, 무리하게 일반화시키지 않고 이야기하자면『殼ノ少女』속에서 인간의 삶에 있어서의 방향성이라는 것은 마치 기도와도 같은 것은 아니었는지. 광기에 사로잡혀 살인을 저지른 사람도, 토우코도, 레이지도 결국 가슴 속에 품은 작은 기도를 이루어가기 위해 살아갔던 것이었습니다. 그 기도의 발현이 어떻게 이루어졌는가에 따라 선이나 악이라는 라벨을 붙일 수 있겠지만, 결국 그것은 부차적인 것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불안, 그리움, 외로움 등으로 대변되는 '결여' 를 메꾸기 위한 각양각색의 발버둥이 묘사된 이 이야기 속에서 저는 서글픔과 동정을 일관되게 느꼈습니다. 하지만 저 또한 위에서 내려다보듯『殼ノ少女』의 등장인물들을 불쌍히 여길 만큼 굳건한 인간은 아니기에, 제 삶의 방향성이라는 것 또한 "나 자신이 이러한 모습으로 있었으면 좋겠다." 는 미약한 기도에 불과하기에, 이 이야기를 긍정하고 싶습니다. 비록 앞을 향해 걸어나갈 수 있을 만큼의 충분한 용기를 얻진 못했지만, 그래도 마음 속에 품고 있는 작은 기도가 메마르지 않을 만큼의 일말의 따뜻함을 얻은 것만으로도 만족하려 합니다. 내 마음 속의 기도에 한 가지만 덧붙여보려 합니다. 토우코가 눈을 감는 그 순간, 외로움이나 불안감보다는 평온을 느낄 수 있기를. 한걸음 더 나아가, 이루어지지 않을 덧없는 기도일지라도 부디 살아서 행복을 그 손에 움켜쥘 수 있기를. 그리고 나 자신도 그럴 수 있기를. - BGM "殼ノ少女" by Innocent Gr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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