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07월 11일
모른다고 말하는 것.
예전에는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어설프게 아는 척을 늘어놓는 빈 수레보다는 낫다고 생각했기에.
실은 그것조차 잘 지키지 못하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런 적도 꽤 있지만,
여하튼 그랬으면 좋겠다는 희망사항이라는 이야기다.
그런데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것은 아는 것을 안다고 떠벌리는 태도와 일맥상통하고 있는 것 같다.
이 얼마나 치졸한 당돌함인가.
몇 안되는 아는 것으로 잘난 척을 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리는 바보였을 따름이다.
몇년이 지난 지금은, 아는 것도 모른다고 말할 필요 또한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을 낮추는 겸양의 미덕 같은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나 하나 모른 척 하고 넘어가면 모든 것이 원만히 수습되는 일들이 많다는 거다.
타인의 치부, 눈치채지 못했던 가면, 숨겨진 호의 같은 것들.
비겁하다고 손가락질을 받더라도 변명할 말이 없고, 변명할 생각 또한 없다.
하지만 그것들을 눈치채고, 알고 있다고 소리높여 외쳐본들 무슨 소용이겠는가.
타인을 변화시킬 만큼의 영향력이 없는 지적은 그저 쓸데없는 참견에 불과하고,
지나간 과거를 다시 들춰보아도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짓일 뿐이다.
그리고 애시당초 나 또한 깨끗하고 완전무결한 인간이 아니며, 이제와서는 드러내지 못할 마음도 갖고 있으니까.
그래서 이제는 눈을 감고 입을 다물고자 한다.
사실 섭섭함, 배신감에 대한 표현은 억누르는 것도 익숙하다.
여기서부터는 슬슬 본래 말하려고 했던 것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것이지만,
아직 그냥 넘어가기에는 완전히 달관하지도 못했고 차가워지지도 못했기에 끄적인다.
부정적이지 않은 감정에 대한 반응이랄까.
딱히 대단할 것 없는 나이지만, 정성을 다해서 마주보고 싶었던 사람은 있다.
만일 그가 아직 나를 기억하고 있다면 단 하나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
바로 세상에 대용품은 없다는 사실.
다른 사람을 덧씌워 보거나 호의에 어리광을 부릴 따름이어도, 그 또한 아무에게나 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내 곁을 걷고 있었던 사람이 특별했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도 미안한 것은 용기가 없고 솔직하지 못해서 그 특별함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던 것이지,
누군가를 떠올리기 위한 프리즘으로 삼았기 때문은 아니다.
그게 어쨌냐고 한다면, 그냥 그렇다는 이야기다.
예전에는 내 감정이 다르게 인식되는 것을 마냥 싫어했던 치기어린 부정으로 곤란하게 만들었지만,
이제는 그저 스스로를 대용품으로 생각하진 않았으면 하는 바람만이 남았다.
지금은 어떤지 알 길 없으나, 예전 편지를 읽고 있자니 가슴이 아프거든.
감정이 복받쳐 오르는 밤은, 역시 맨정신으로 있어봤자 좋은 꼴 보기 어렵다.
쓰레기통에 쑤셔넣었던 몇백 장의 편지지처럼, 백스페이스로 대체 몇 자를 지운 건지.
어설프게 아는 척을 늘어놓는 빈 수레보다는 낫다고 생각했기에.
실은 그것조차 잘 지키지 못하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런 적도 꽤 있지만,
여하튼 그랬으면 좋겠다는 희망사항이라는 이야기다.
그런데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것은 아는 것을 안다고 떠벌리는 태도와 일맥상통하고 있는 것 같다.
이 얼마나 치졸한 당돌함인가.
몇 안되는 아는 것으로 잘난 척을 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리는 바보였을 따름이다.
몇년이 지난 지금은, 아는 것도 모른다고 말할 필요 또한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을 낮추는 겸양의 미덕 같은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나 하나 모른 척 하고 넘어가면 모든 것이 원만히 수습되는 일들이 많다는 거다.
타인의 치부, 눈치채지 못했던 가면, 숨겨진 호의 같은 것들.
비겁하다고 손가락질을 받더라도 변명할 말이 없고, 변명할 생각 또한 없다.
하지만 그것들을 눈치채고, 알고 있다고 소리높여 외쳐본들 무슨 소용이겠는가.
타인을 변화시킬 만큼의 영향력이 없는 지적은 그저 쓸데없는 참견에 불과하고,
지나간 과거를 다시 들춰보아도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짓일 뿐이다.
그리고 애시당초 나 또한 깨끗하고 완전무결한 인간이 아니며, 이제와서는 드러내지 못할 마음도 갖고 있으니까.
그래서 이제는 눈을 감고 입을 다물고자 한다.
사실 섭섭함, 배신감에 대한 표현은 억누르는 것도 익숙하다.
여기서부터는 슬슬 본래 말하려고 했던 것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것이지만,
아직 그냥 넘어가기에는 완전히 달관하지도 못했고 차가워지지도 못했기에 끄적인다.
부정적이지 않은 감정에 대한 반응이랄까.
딱히 대단할 것 없는 나이지만, 정성을 다해서 마주보고 싶었던 사람은 있다.
만일 그가 아직 나를 기억하고 있다면 단 하나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
바로 세상에 대용품은 없다는 사실.
다른 사람을 덧씌워 보거나 호의에 어리광을 부릴 따름이어도, 그 또한 아무에게나 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내 곁을 걷고 있었던 사람이 특별했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도 미안한 것은 용기가 없고 솔직하지 못해서 그 특별함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던 것이지,
누군가를 떠올리기 위한 프리즘으로 삼았기 때문은 아니다.
그게 어쨌냐고 한다면, 그냥 그렇다는 이야기다.
예전에는 내 감정이 다르게 인식되는 것을 마냥 싫어했던 치기어린 부정으로 곤란하게 만들었지만,
이제는 그저 스스로를 대용품으로 생각하진 않았으면 하는 바람만이 남았다.
지금은 어떤지 알 길 없으나, 예전 편지를 읽고 있자니 가슴이 아프거든.
감정이 복받쳐 오르는 밤은, 역시 맨정신으로 있어봤자 좋은 꼴 보기 어렵다.
쓰레기통에 쑤셔넣었던 몇백 장의 편지지처럼, 백스페이스로 대체 몇 자를 지운 건지.
# by | 2010/07/11 20:55



